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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2015

꽃이여, 기억하는가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바람 같은 영혼이 되리라.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붙잡히지 않은 채, 마음이 이끄는 곳을 따라 가볍게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하염없이 날고 또 날아오르다, 어느 순간 내가 머물고 싶은 한 송이 꽃도 만나리라.

그 꽃 위에 날개를 접고 앉아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셀 수 없는 나날, 푸르고 어둡게도 바뀌었던 하늘,

지치지 않는 날개짓으로 날아온 수백년의 시간을.

기억을 되짚고 천천히 더듬어서 지나온 하루 한 시간을 빠짐없이 들려주리라.

그 꽃, 날이 저물어 꽃잎을 닫고 잠들기까지.

나 또한 그 꽃 위에 고단한 날개를 잠시 쉬리라.

야위어 가는 달을 짐짓 원망도 하며 내 꽃의 아름다운 잠을 아껴주리라.

날이 밝은 후에는 비로소 가슴에 묻어두었던 오래 된 고백을 보여주리라.

수백년이 지났으나, 바람에도, 빗물에도 전혀 닳지 않은..

 

 

꽃이여, 기억하는가.

여기 이 자리, 그대가 뿌리 내리고 꽃잎을 피고 지웠던 이 자리에 이미 나도 있었노라고.

그대가 수백번 잠이 들고 깨는 동안 바람처럼 머물며 그대를 지켜보았노라고.

바람이 그대를 흔들면 하늘 위로 올라가 바람을 잠재우고

빗방울이 그대를 때리면 구름 위로 쫒아가 비를 꾸짖었노라고.

그대에게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빛을 나의 날개로 가려 그대에게 그늘이 되기를 원했노라고.

꽃이여. 그대는 나의 눈물을 모르고 오늘도 그저 아름답기에

수백년을 가둬 온 나의 눈물을 오늘도 흘리지 못한다.

그대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대가 아름다우므로 나는 더이상 날아오르지 않는다.

잠들지 못했던 수백년의 꿈을 이곳에서 다시 재우리라.

더이상 불지 않는 바람처럼, 날개를 접은 나비처럼, 그대 곁에 머물면서 꿈을 꾸리라.

영원히 깨지 않는 길고 긴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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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0) 2015.03.30